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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설명 깊이의 착각과 학습 심리학

목차
1. 들어가는 말
2. 설명 깊이의 착각이란?
3. 대표실험 : 변기, 자전거, 지퍼의 원리
4. 설명 깊이의 착각이 학습에 미치는 영향
5. 학습 착각을 줄이는 심리학적 훈련
6. 맺음말

 

들어가는 말

누군가 자전거 작동법을 묻는다면, 대부분은 문제없이 대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막상 그림을 그려보거나, 그 원리를 설명하려고 하면 생각보다 말문이 막히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아는 것 같았는데 설명은 어렵다'는 이 어색한 지점은 단지 개인의 표현력 부족이 아니라, 심리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인지 편향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어떤 개념이나 대상, 기술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고 믿지만, 막상 그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려고 할 때 부족함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설명 깊이의 착각(Illusion of Explanatory Depth)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이 글에서는 이 개념이 무엇인지, 어떤 실험을 통해 입증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학습, 사고력, 교육 방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표면적으로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사람으로 설명 깊이의 착각에 빠져있는 모습.

 

설명 깊이의 착각이란?

설명 깊이의 착각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자세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자신이 특정 개념이나 기계, 시스템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 인지 편향을 의미합니다. 즉, 표면적으로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깊이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경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무지와는 다릅니다.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안다고 믿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착각은 특히 일상에서 자주 접하지만, 자세히 설명해 본 적 없는 개념이나 기계, 제도에서 자주 드러납니다. 변기의 물 내리는 구조, 헬리콥터의 비행 원리, 세탁기의 작동 방식처럼 익숙한 사물을 떠올려 보세요. 설명을 요구받았을 때, 우리는 그 익숙함에 의존해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핵심 원리나 작동 방식에 대해 매우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 실험 : 변기, 자전거, 지퍼의 원리

이 개념을 가장 인상 깊게 보여주는 실험은 로엔스타인(Leonid Rozenblit)과 프랭크 케일(Frank Keil)이 2002년에 실시한 연구입니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에게 '변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지퍼가 어떻게 열리고 닫히는지', '자전거가 어떻게 균형을 유지하며 움직이는지' 등 매우 일상적인 물건의 작동 원리를 설명해 보라고 했습니다. 처음 질문을 들었을 때 참가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이해도를 7점 만점에 5~6점 수준으로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글이나 말로 설명을 시도한 뒤, 다시 스스로의 이해도를 평가하게 하자, 평균 점수는 2~3점 수준으로 급감했습니다. 이 실험은 사람들이 익숙함과 이해를 혼동하고 있으며, 설명이라는 활동이 얼마나 강력한 '무지의 자각 장치'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설명 깊이의 착각이 학습에 미치는 영향

설명 깊이의 착각은 단순한 오해를 넘어, 학습의 질과 태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인지적 요인입니다. 학생이나 학습자가 '나는 이미 이 내용을 안다'라고 착각할 경우, 반복 학습이나 심화 학습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학습을 중단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정보는 장기 기억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시험이나 실제 상황에서 쉽게 무너지게 됩니다.

특히 개념 이해가 중요한 수학, 과학, 사회과목, 그리고 철학이나 경제학처럼 개념 간 연결이 중요한 과목일수록 이 착각은 학습 효율을 크게 떨어뜨립니다. 더 나아가, 이 편향은 비판적 사고력 저하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자신이 충분히 이해했다고 믿는 정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게 되고, 잘못된 정보에 대한 검토 없이 자신감을 갖는 경향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이는 학습의 깊이를 얕게 만들고, 창의적 문제 해결력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학습 착각을 줄이는 심리학적 훈련

이런 착각을 줄이기 위해 심리학자들과 교육자들이 제안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설명하기 학습법(elaborative interrogation)입니다. 이는 자신이 배운 개념을 스스로 또는 타인에게 설명해 보는 연습을 통해, 진짜 아는 것과 착각을 구분하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혈압이 왜 높아지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단순히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답하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가 어떻게 신경계와 호르몬을 자극하고, 그로 인해 혈관이 어떻게 반응하는지까지 단계적으로 설명해 보는 방식입니다. 또 하나의 방법은 페인만(Feynman) 학습법으로, 아인슈타인에 버금가는 물리학자 리처드 페인만이 제안한 방식입니다. 그는 "진짜 이해한 것이라면 초등학생에게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설명을 통해 개념의 허점을 인식하고, 그 허점을 메워가는 과정은 지식의 깊이를 효과적으로 확장시키는 전략입니다.

 

맺음말

설명 깊이의 착각은 우리 모두에게 있는 자연스러운 인지적 편향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착각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것을 인식하고 점검하는 태도입니다. 학습을 할 때 아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한 번쯤 멈추고 스스로에게 이걸 정말 설명할 수 있는지 물어보는 겁니다. 설명은 학습의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표면적 이해에서 깊이 있는 이해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더 자주 설명해 보고, 더 많이 질문해야 합니다. 학습은 아는 것을 쌓는 것이 아니라, 모른다는 것을 덜어내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익숙함에 속지 않고, 진짜 이해를 추구하는 그 첫걸음이 설명하려는 시도에서 시작된다는 것. 그것이 이 편향이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입니다.